- 49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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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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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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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이 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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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아버지가 아들과,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딸과, 딸이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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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구름이 서쪽에서 이는 것을 보면 곧 말하기를 소나기가 오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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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남풍이 부는 것을 보면 말하기를 심히 더우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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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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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지 아니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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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네가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갈 때에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쓰라 그가 너를 재판장에게 끌어 가고 재판장이 너를 옥졸에게 넘겨 주어 옥졸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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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네게 이르노니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갚지 아니하고서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사실 오늘 큐티는 큰 깨달음이나 감동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 그렇구나 하고 앞으로는 그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뿐이다.
하나님께서 오늘의 말씀에 대해서 나에게 어떻게 말을 할지 하루동안 생각을 해보아야겠다.
우선 49-50절에서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불을 땅에 던지려고 오셨다고 하셨다.
해설에서 불은 두 가지를 뜻한다. 하나는 태워 소멸하는 '심판'을 뜻하고 다른 하나는 더러운 것을 태워 깨끗게 하는 '정화'를 뜻한다.
여기서의 공통점은 악한 것을 없애고 선만을 남기는 것 같다. 여기서 생각해 볼 점 하나는 나는 과연 악한 것들을 다 태웠을 때에 선할 수 있는 것인가 이다. 나는 악한 것을 없앴을 때 내 안에 주님은 얼마나 존재하고 얼마나 선할 수 있으며 혹은 그저 텅텅 빈 깡통은 아닐지 생각해 본다.
51-53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분쟁을 일으키러 오신다고 하셨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뜻인지 몰랐으나 그저 사람과 사람의 분쟁이 아닌 세상과 하나님의 사람 혹은 해설에서 나온 것처럼 주님에 대한 충성과 세상을 향한 충성의 분쟁임을 나타내고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예수님의 행적 중에서 강경한 대응을 하신 부분들을 생각해 보았다. 어리석은 자들을 꾸짖으시고 교회에서의 장사꾼들을 쫓아내시는 모습들을 보며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기꺼이 분쟁을 일으켜 선을 이끄셨다.
54-56절에서는 시대를 분간하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하신다. 일기 예보를 하고 앞으로 어떻게 일이 일어날지 예측은 하면서 왜 이 시대 혹은 하나님이 오실 그날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 않고 분별하지 않는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번 큐티 시간에 말했던 것 처럼 세상에 너무 물들어 있으면 시야가 좁아진다. 마치 어던 사물을 눈 앞에 두고 가까이보게 되면 그 주변 다른 것들 혹은 그 넘어에 있는 더 큰 것들이 안 보이듯이. 세상을 분간하기 위해서는 우선 세상과 멀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언제나 나의 시야를 잃고 있을 순 없다. 57-59절에서 이 내용에 대해서 더욱 자세히 이야기 한다.
옥에 갇혀서 나오지 못할 상황 가운데에서 나를 고발하는 사람과 화해를 해야 한다고 한다. 오늘의 나를 고발하는 것은 무엇인가?
현실에서의 성취? 물질적인 욕구? 스스로 안정감을 찾아 나아가려는 것? 이 모든 것들이 다 나의 걸림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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