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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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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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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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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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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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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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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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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어떤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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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또 찾아낸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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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타인을 바라보며 죄인이라고 하는 서기관들을 보면서 누가 누구를 죄인이라고 하는가? 그들은 과연 스스로를 깨끗하다고 여기는 것 같은데 과연 주님의 입장에서는 동일한 시각으로 바라보실까?라는 생각을 하며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라는 속담이 떠오르게 되었다. 이 장면을 보면서 타인을 바라볼 때 나는 그렇지 않다는 생각을 하면서 흠을 찾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같이 함께하고(영접) 함께 성장하고 또한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태도가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양이나 드라크마 비유에서는 항상 나는 내가 찾아지는 경우를 생각하게 되었는데 처음으로 찾는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다.
내가 의인이라서 찾는 입장이 아니라 내가 나의 신앙을 찾는.. 내가 나를 하나님 안에 거하는가?라는 생각을 하며 스스로 점검하는 시간이 필요함을 느꼈던 것 같다. 또한 어제 한 pk 친구가 자신을 스스로 비기라고 선언한 것을 듣게 되었다. 그렇기에 더 그런 생각을 한 것 같다. 같은 pk로써 오히려 자신의 신앙을 찾기 쉽지 않고 오히려 타인의 신앙을 많이 보게 되고 그 가치를 찾아가는 것이 쉽지 않음을 공감할 수 있어서 더욱 안타까웠다. 그렇기 때문에 나 혼자만 구해지는 것이 아닌 타인 또한 구해야 한다는 시각으로 말씀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또한 새로운 입장으로 바라보았을 때에 10드라크마의 가치들을 생각해 보았다.
예를 들어서 나는 어떠한 물건을 10드라크마에 구매를 하여야 한다. 하지만 9개의 드라크마가 있으면 구매를 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잃어버린 하나의 드라크마를 더욱더 찾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10개의 드라크마의 가치는 하나하나 동등하게 된다. 어느 하나 더 가치가 있어서 찾게 되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렸기 때문에, 10개가 있음으로 완성이 되기 떄문에, 필요함을 더욱 더 느끼기 때문에 오히려 부각이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예전에는 그렇다면 다른 99마리와 9드라크마는 잃어버린 것 보다 조금 하찮게 여겨 지는 것인가? 락 생각해 보았을 때에 이런 관점으로 생각해 보게 된다면 그저 잃어 버렸기 때문에 더욱더 부각이 되고 필요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고 결코 그 가치는 변하지 않고 모두 동등하게 된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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